그리스·로마 신화39 - 처녀신이었던 아르테미스가 결혼할뻔했던 유일한 남자 오리온
아르테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남자도 가까이 하지 않은 대표적인 처녀신입니다. 이복 언니였던 아테나와 큰 고모 헤스티아와 함께 올림포스의 3대 처녀신이었던 그녀는 차갑고 무뚝뚝한데다가 심지어 남자를 혐오까지 해서 본인은 물론 요정들에게 치근덕대거나 겁탈하려는 남성들을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무서운 면도 있었습니다. 처녀신 중에서 집착과 자존심도 강했습니다. 그래서 악타이온, 아가멤논, 칼리스토와 같이 아르테미스의 심기를 건드린 자들은 비참하게 죽었고, 그 가족들도 몰살당했습니다. 물론 남자중에 아버지였던 제우스와 동 아폴론은 예외였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세 살때부터 순결하고 고고한 처녀신이 되고 싶어 제우스에게 평생 결혼하지 않고 영원한 처녀로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훌륭한 사냥개와 요정들을 거느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맹서를 받아냈습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섬기고 순결을 지키기로 맹세한 많은 요정들이나 인간 여성들과 함께 사냥을 다니며 살았습니다. 처녀신이었던 그녀가 딱 한 번 결혼할뻔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던 오리온이었습니다. 사랑을 느낀 아르테미스는 그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리온의 어머니는 크레타섬의 미노스 왕의 딸 에우리알레였습니다. 어머니는 인간이었지만 아버지는 신이었기 때문에 오리온은 반신반인의 영웅이었는데, 몸집은 티탄족만큼이나 컸고 포세이돈에게 바다를 걸어다닐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리온은 바다보다는 주로 들과 숲에서 이름을 떨치던 탁월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오리온은 시데라는 엄청난 미모의 여인과 결혼을 해 미네페와 멜리오케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시데는 엄청난 미인이었지만 허영심도 강해 자신이 헤라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헤라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인간 주제에 감히 덤벼든 시데를 괘씸하게 여긴 헤라는 시데를 저승인 하데스로 던져버렸습니다. 갑자기 홀아비가 되어버린 오리온은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다 키오스섬에 가게 됐는데 그곳의 왕인 오이노피온의 딸 메로페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술을 마시고 메로페에게 과하게 들이댔다가 오이노피온의 미움을 샀습니다. 오이노피온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자던 오리온의 눈을 뺴버린 뒤 바다에 던져 섬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아내도 잃고, 눈도 뽑인 뒤 쫓겨난 오리온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리온은 더듬더듬 바다를 걸어 렘노스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를 만났습니다. 오리온의 사정을 들은 헤파이토스는 자신의 조수였던 케달리온을 오리온에게 내줬고, 케달리온은 오리온의 어깨에 앉아 오리온의 안 보이는 눈을 대신해 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케달리온의 도움을 받아 다음으로 간 곳은 태양의 신 헬리오스 궁전이었습니다. 태양의 신이었던 헬레오스는 어둠을 걷어내고 태양의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존재였기 때문에 오리온은 자신의 어둠도 걷어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헬리오스는 오리온의 믿음대로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빛을 줬습니다. 마침내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된 오리온은 복수를 하기 위해 오이노피온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오리온의 복수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였던 포세이돈이 자기 아들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까봐 걱쟁돼 지하에 비밀 요새를 만들고 오이노피온을 숨겨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밀 요새는 포세이돈의 부탁으로 헤파이토스가 만든 것이라 오리온도 결코 뜷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리온이 아르테미스를 만난 것은 복수를 위해 오이노피온에게 향하던 길에서였는데, 오리온의 사연을 들은 아르테미스는 복수는 잊고 사냥이나 즐기며 같이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복수가 먼저였던 오리온은 오이노피온을 찾아갔고, 복수에 실패한 뒤에야 다시 아르테미스를 찾아가 함께 사냥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에게 늘 일편단심이었지만 오리온에게 아르테미스는 그저 많은 여인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를 본 아폴론은 하나뿐인 여동생이 바람둥이인 오리온과 어울리는게 늘 불만이었습니다. 남자들을 혐오하던 아르테미스가 오리온과 함께있을 때는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신들 사이에서는 둘이 곧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기 시작하자 아폴론은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폴론은 오리온이 바다에서 한가롭게 수영을 즐기는 것을 발견하고 아르테미스에게 요즘 사냥실력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저 바다 위에 떠있는 검은 물체를 맞출 수 있겠냐고 도발합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한 아르테미스는 망설이지 않고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은 정확히 오리온의 머리에 명중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제서야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아르테미스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부탁해 오리온을 별자리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부탁으로 별자리가 된 오리온은 겨울철의 대표적인 별자리로 10월에 동쪽 하늘에 나타나 3월까지 밤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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