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40 - [올림포스 12신] 전쟁의 신 아레스

그리스 신화에서 인기가 없는 신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전쟁의 신 아레스입니다. 전쟁의 신이지만 맨날 패배하고, 부상 당하고, 도망치면서도 끊임 없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아레스였습니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근육질의 몸과 잘생긴 얼굴 때문에 신화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프로디테도 그에게 반해 바람을 피기도 했습니다. 그의 형제였던 헤파이토스가 추한 외모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일을 하느라 항상 땀에 찌들어 있었던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신화에서 보통 아레스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로 무장한 모습인데 덩치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크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와 살육을 즐기는 난폭하고 잔인한 신으로 전쟁터에 나갈때는 두려움과 공포의 신인 데이모스와 포보스, 불화의여신 에리스, 싸움의 여신 에니오 등 네명의 신들을 거느리고 다녔습니다.

아레스는 혈통, 외모 모두 제우스의 후계자로 손색 없어 보였지만, 제우스는 항상 아레스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아레스가 언제나 다툼과 전쟁, 전투만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제우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전쟁의 신이었던 아테나와 자주 비교도 됐습니다. 아테나가 전략과 전술로 인명과 도시를 보호하는 신이라면, 아레스는 아무런 목적도 명분도 없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을 즐기는 신이었습니다. 따라서 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게 하니 그리스 사람들은 모두 아레스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는 않았고, 두려워하거나 원망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신이었던 아레스는 대체로 인간들보다는 강했지만 신들 중에서는 대단히 잘 싸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편에 섰지만 그리스편에 선 아테나와 맞대결을 했다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고, 그리스의 맹장 디오메데스와의 싸움에서도 아레스는 창에 찔려 물러났습니다.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와 싸워 부상을 입었고, 오토스와 에피알데스 형제에게 잡혀 청동 항아리에 13개월 동안이나 갇히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레스는 전쟁을 일으켜 신들과 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 슬픔은 안겨줬지만 정작 전쟁에서는 빛나는 활약을 하지 못하는 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불량스럽고 폭력의 신이었던 아레스가 ‘법과 재판’의 상징이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위해 신화 최초로 재판을 벌였던 언덕입니다. 아레스의 재판 이후에도 이곳은 중요한 사건들을 결정하던 고대 명문 귀족들의 공간으로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건은 이 언덕 아래 샘물가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레스에게는 아테네의 왕 케크롭스의 딸 아글라우로스 사이에서 낳은 알키페라는 딸이 있었는데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에게 겁탈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노한 아레스는 딸을 겁탈한 할리로티오스를 죽여버렸고, 포세이돈은 아들을 죽인 아레스를 고발하며 올림포스신들로 이뤄진 법정에 재판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판은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열리게됩니다.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던 할리로티오스는 평소 아테네 전역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지만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다들 속앓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알키페가 꽃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달려들어 그녀를 겁탈해버렸습니다. 따라서 아레스는 자신의 딸을 겁탈한 할리로티오스의 죽음이 당연하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레스는 내 아들을 죽인 포악한 살인자입니다. 아레스의 12신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재판관은 제우스, 아레스의 변호인은 아테나, 원고는 포세이돈, 피고는 아레스, 방청객 겸 배심원은 올림포스의 신들과 인간들이었으며 재판이 시작되자 포세이돈은 자신의 아들이 아레스의 손에 죽었음을 강조하며 아레스를 아예 12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애초에 이 사건의 원인은 할리로티오스가 제 딸 알키페를 겁탈해서 생긴 일입니다. 그 놈은 성범죄자로서 당연한 최후를 맞이한 것 뿐입니다”

아레스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덤덤하게 할리로티오스의 범행을 알리며 당연한 죗값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에 포세이돈은 더욱 격분했지만 아레스의 변호인 아테나는 현장 증언을 위해 알키페를 증인으로 소환했고, 알키페는 당시 자신이 겪은 상황을 남김 없이 증언했습니다.

재판 결과는 아레스의 압승이었습니다. 포세이돈은 아레스가 다른 신들과 사이가 나쁜 것을 이용해 자신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헤르메스는 아레스가 할리로티오스를 죽이는 것을 아무도 본적이 없다고 아레스를 옹호했습니다. 배심원단 다수가 여신들이었던 것도 포세이돈에게는 불리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저는 사랑의 여신이지만 사랑과 겁탈은 동일선상에 올릴수 없다”고 발언했고, 아레스의 어머니였던 헤라는 포세이돈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피고가 된 아들 아레스와 피해자인 손녀 알키페를 응원했습니다. 아레스의 여동생들인 청춘의 여신 헤베와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는 “할리로티오스가 성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던 것 자체가 시작이니 아레스 오빠의 분노는 정당합니다”라고 주장했고, 아르테미스와 사냥의 여신 브리토마르티스, 헤스티아같은 처녀신들은 “평범한 소녀를 강간하려고 한 것 자체가 엄청난 중죄”라며 아레스를 옹호했습니다.

아테나도 평소에 아레스와 사이가 나빴지만 처녀신이었고, 아테네 내에서 할리로티오스가 저지른 만행에 불만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아레스를 변호했고, 데메테르도 예전에 포세이돈이 자신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레스와 알키페를 적극적으로 변호했습니다. 심지어 아레스를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제우스마저 아레스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아레스는 무죄를 판정받았고 포세이돈도 어쩔수 없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최초의 재판이 펼쳐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언덕에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의미의 아레이오스 파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많은 중요한 재판들이 그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오늘날에도 최고 법정을 아레이오스 파고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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