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43 - 신들의 세상에 인간은 언제 나타났을까?
신화는 아무것도 없던 세상에 태초의 신인 카오스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어서 가이아, 타르타로스, 에로스가 태어나 자식들을 낳으면서 이 세상에는 원래 신들만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들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작가 헤시오도스는 ‘일과 나날(Opera et Dies)’에서 인간의 다섯 시대와 종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살던 시대는 황금의 시대였습니다. 제우스의 아버지였던 크로노스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에 태어난 황금의 종족은 이름처럼 풍요롭고 찬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과 궁핍에서 자유로웠고, 곡식과 과일은 넘쳐나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불멸의 신들처럼 늙거나 죽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고통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으면서 황금 종족의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결한 정령들이 되어 살아 있는 인간들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황금의 종족이 사라진 뒤에도 좋은 영혼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사람을 도와주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어지는 시대는 은의 시대입니다. 은의 종족들은 올림포스 신들이 지배하던 시기에 태어났는데 황금의 종족보다는 열등했습니다. 성장은 느려서 100년 동안이나 어머니의 품 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보살핌을 받았고, 몸과 마음은 약해 성인이 되도 철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어리석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았고, 무모해서 죽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황금 시대에는 없었던 범죄들도 발생했지만 억제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들에게도 불경스러워 제물을 바치거나 공경하는 것에도 소홀해 신들과는 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노한 제우스는 은의 종족들을 없애버리기로 마음 먹었고, 가이아들은 그들을 땅 아래로 숨겼습니다.
새로운 청동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청동의 종족은 제우스가 물푸레나무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일해야 했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침략과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고단한 삶은 그들의 성격을 거칠고 난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서로 싸우며 죽이는 잔혹함이 용맹스러움으로 여겨졌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며 살아갔습니다.
청동의 종족은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서로의 창과 칼에 쓰러져 갔습니다. 하지만 이 종족이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아르카디아의 왕이었던 리카온이 제우스에게 저지른 만행 때문이었습니다. 청동의 종족의 폭력성이 점점 짙어지자 제우스는 인간들이 어떤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헤르메스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지상으로 내려와 만난 인물이 리카온이었습니다. 리카온은 평소에 신을 무시하고 경멸하던 인물로 신을 시험하겠다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뒤 그 인육을 구워 제우스에게 대접하려 했습니다. 이를 알게된 제우스는 크게 분노했고 결국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모두 쓸어버렸습니다. 대홍수로 모든 인간들은 사라졌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었던 데우칼리온만이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미리 방주를 만들어 아내 퓌라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어지는 시대는 영웅의 시대입니다. 영웅들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 반신반인의 존재였고, 청동의 종족보다는 선량한 존재였습니다. 영웅 종족도 제우스가 만들었는데 인간이나 요정, 여러 여신들과 사랑을 나눠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제우스의 아내였던 헤라는 이런 제우스의 바람기에 치를 떨었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려면 인간 영웅이 필요하다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물론 제우스 말고도 포세이돈, 아레스, 헤르메스 등의 남신들도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눠 영웅 종족들을 낳았으며, 여신들도 인간들과 사랑을 나눠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영웅 종족이 너무 늘어나면서 신들은 위협을 느꼈고 여러 가지 방법들로 영웅 종족들을 숙청했습니다.
신들은 영웅 종족을 숙청하기 위해 테베 공방전과 트로이 전쟁 같은 인간들 간의 전쟁을 일으키거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분쟁을 일으켜 영웅들이 서로 죽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숙청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은 영웅들과 후손들은 대부분 그리스 각지에 국가를 세우고, 여러 왕가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웅 종족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테베와 트로이에서 전쟁이 일어난 후 영웅 종족이 멸종됐는데, 일부는 죽거나 일부는 세상에 끝에 있는 축복의 섬 엘리시온에서 아무 근심 없이 영생을 누렸다고 합니다.
영웅 종족이 사라진 후에는 철의 종족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사악했고, 삶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부모에게 은혜를 갚지 않고, 폭행을 일삼으며 힘센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또한 악행과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 떵떵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인간들이 타락하면서 절망한 신들은 모두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버렸고, 마지막까지 지상에 남아 사람들이 화해하도록 설득하고 정의를 호소했던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마저 지상을 떠나면서 철의 종족은 현재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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