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46 - 호기심과 질투 때문에 돌이 된 비극적인 여인

신의 사랑을 받은 언니를 질투하다 돌이 된 비극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아테네의 공주 아글라우로스로 케크롭스 왕의 딸이었습니다. 케크롭스는 ‘케크롭스의 도시’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케크로피아를 다스리던 왕으로 아테나는 이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포세이돈과 경쟁해 승리한 뒤 수호신이 되었고, ‘아테네’라는 이름의 도시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는 케크롭스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그의 딸은 아테나의 미움을 샀고, 결국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아테네는 처녀신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그녀를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을 세울때도 ‘결혼하지 않은 여신의 신전’이라고 지을만큼 그녀는 순결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결을 지키던 여신에게도 자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처녀신에게 자식이라니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이의 아버지는 헤파이토스였습니다. 헤파이토스는 신화 속 최고의 미녀인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었는데 어떻게 아테나와 아이를 낳았을까요? 아프로디테는 제우스 때문에 헤파이토스와 강제로 결혼 했습니다. 남자를 선택할 때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녀였기에 헤파이토스와의 결혼은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헤파이토스는 신들중 가장 못생겼고, 다리까지 절뚝거렸습니다. 오죽하면 어머니였던 헤라도 아들이 부끄러워 갓난아기때 헤파이토스를 바다로 던저버렸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프로디테는 헤파이토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헤파이토스는 무기를 새로 만들기 위해 대장간을 찾아온 아테나를 보고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결국 욕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테나에게 달려들었고, 깜짝 놀란 아테나는 도망쳤습니다. 헤파이토스는 필사적으로 쫓아가 아테나를 품에 안았지만, 아테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해 순결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헤파이토스는 주체하지 못하고 사정을 해버렸고, 그의 정액은 그만 아테나의 허벅지에 묻었습니다. 불쾌하고 더럽게 여긴 아테나는 허벅지에 묻은 정액을 양털로 닦아 낸 다음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땅에 닿자 대지의 여신이었던 가이아를 임신시켜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뜻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났고, 부모는 누군지 불명확했습니다. 가이아가 낳았으니 헤파이토스와 가이아의 아이일수도 있고, 헤파이토스가 아테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분출한 정액으로 시작됐으니 헤파이토스와 아테나의 아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가이아와 헤파이토스는 모두 양육을 거부해 아테나는 본인이 직접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를 거두어 키웠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헤파이토스 정액이 묻은 양털이 땅에 닿아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릭토니오스였습니다. 아테나는 순결한 처녀신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아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당황해 일단 신들이 알지 못하게 아이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아테네로 향했습니다. 케크롭스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한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케크롭스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케크롭스의 세 딸이 아테나를 맞이했고, 아테나는 세 딸에게 바구니를 맡기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며 케크롭스가 돌아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떠났습니다.

세 딸 중 둘은 아테나의 신신당부에 차마 바구니를 열어볼 생각조차 안 했지만, 아글라우로스는 호기심에 아테나의 당부를 무시하고 바구니를 열어 속을 들여다 보고 말았습니다. 바구니 안에는 갓난 아이였던 에릭토니오스가 누워 있었고, 양 옆에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테나가 넣어둔 뱀 두 마리가 에릭토니오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아테나는 아이를 꺼내 파르테논 신전으로 옮겨 길러졌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아글라우로스는 케크롭스의 딸이었지만 아테나의 미움을 샀고, 아테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벌을 내려야겠다고 벼르게 되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매년 7월 아테네를 기리는 성대한 축제 ‘판아테나이아’가 열립니다. 아테네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라는 뜻인데 아테네의 생일잔치에 가깝습니다. 축제가 시작되면 순결한 처녀들이 화환을 두른 바구니 안에 성스러운 제물들을 담아 머리에 이고 파르테논 신전으로 나르는 행렬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의식은 아테나 여신상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의식이었는데, 케크롭스의 세 딸도 그 행렬에는 반드시 참여했습니다.

행렬이 진행되던 그때 마침 하늘을 날고 있던 헤르메스는 우연히 행렬에 참여한 케크롭스의 세 딸 가운데 헤르세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헤르메스는 축제가 끝나고 밤이 되자 케크롭스의 궁전으로 내려와 헤르세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복도에서 아글라우로스를 만났고 그녀는 헤르메스를 막아섰습니다.

다급했던 헤르메스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아글라우로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돌하게도 아글라우로스는 신이었던 헤르메스에게 도움을 줄테니 황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아테나가 모두 보고 있었습니다. 아테나는 바구니를 열었던 것 때문에도 벼르고 있었는데, 인간 따위가 신과 흥정하려는 것을 보고 질투의 여신 젤로스를 찾아가 아글라우로스가 헤르메스의 사랑을 받는 언니 헤르세를 질투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테나의 부탁을 받은 젤로스는 기픈 밤 아글라우로스의 방으로 숨어 들어 곤히 자고 있는 아글라우로스의 가슴에 손을 얹고, 가시로 그녀의 심장을 가득 채운 뒤 시커먼 질투의 독액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독액은 아글라우로스의 뼈와 허파속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습니다. 다음날 잠을 깬 아글라우로스는 언니 헤르세를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아니라 언니가 헤르메스의 사랑을 받는거지? 내가 언니보다 훨씬 더 예쁘고, 똑똑한데!!”

이런 생각들이 들며 속이 상한 아글라우로스는 계속해 언니를 질투했고, 입맛도 잃어 밥도 먹지 않았으며 한숨만 쉬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질투의 시간이 계속될수록 그녀는 삐쩍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도저히 둘이 잘되는 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둘의 사이를 깨고 싶었던 아그라우로스는 언니 방 문을 가로막고 서서 헤르메스가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헤르메스는 처음에는 좋은 말로 비키라고 했지만 아글라우로스는 막무가내로 버텼습니다.

헤르메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헤르세의 동생이라 봐주고 있었지만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항상 들고 다니던 지팡이 카두케우스로 아글라우로스를 밀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밀쳐진 아글라우로스는 일어서서 헤르메스를 붙잡으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이 마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몸은 점점 굳어갔고, 핏기는 사라지며 체온도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몸이 돌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어느새 목도 꽉 막히기 시작해 딱딱한 돌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헤르메스는 헤르세와 사랑을 나눠 케팔로스를 낳았고, 아테나가 정성을 다해 키운 에릭토니오스는 케크롭스에게 권력을 넘겨 받아 아테네의 왕이 되어 아테나 못지 않게 뛰어난 지혜와 정치력으로 아테네를 잘 다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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