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54 - [테베 이야기6] 왕권을 두고 끊이지 않는 싸움.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오이디푸스가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난 후 왕권은 다시 이오카스테의 동생이자 오이디푸스의 처남이었던 크레온에게 갔습니다. 그는 라이오스 왕이 죽었을 때도 왕권을 행사했다가,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처치하자 왕위를 넘겨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라이오스가 죽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오이디푸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폴리케이네스와 에테오클레스였습니다.

둘은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살해범으로 밝혀지자 아버지를 모욕했고, 장님이 되어서 테베를 떠날때도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큰 아들이었던 폴리케이네스는 장남인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에테오클레스는 국민의 지지를 받은 유능한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은 어찌 그 모양이냐. 이 아비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권력이 뭐라고 형제끼리 싸우는게냐? 그렇게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우다가는 서로가 켜눈 칼에 죽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을 두고 분노와 걱정이 섞인 저주 같은 예언을 했고, 정신을 차린 둘은 싸움을 멈추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저주를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은 고민 끝에 1년씩 번갈아 가며 왕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둘 다 왕이 될 수 있고, 아버지의 저주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왕이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백성들의 신임을 얻는 쪽이 먼저 왕권을 잡는 것이 좋겠다는 에테오클레스의 주장에 폴리케이네스는 설득됐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에테오클레스가 먼저 왕이 되었습니다. 폴리케이네스는 1년 뒤를 기약하며 테베를 떠나 아르고스로 갔고, 그 곳에서 아드라스토스 왕의 딸 아르게이아와 결혼했습니다.

1년이 지나 에테오클레스가 약속대로 왕권을 넘겨줬다면 좋았겠지만, 에테오클레스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폴리네이케스는 뭔가 잘못됨을 느껴 에테오클레스에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왕위를 넘겨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유는 왕위를 넘겨주면 1년 후에 다시 넘겨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폴리케이네스는 1년 후에 반드시 왕권을 넘겨주겠다고 맹세했지만 에테오클레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폴리케이네스는 강하게 반발했고, 에테오클레스는 오히려 그런 모습에 더욱더 형을 믿을 수 없다고 해 1년씩 돌아가면서 왕을 하자던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폴리케이네스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생이 약속을 먼저 지키지 않았으니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르고스로 돌아가 테베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폴리케이네스는 아드라스토스에게 빼앗긴 왕권을 되찾기 위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언자 암피아라오스가 나서서 폴리네이케스의 말대로 테베를 공격한다면 아르고스군은 전멸할 것이라며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예언자의 반대에 아드라스토스는 테베 원정을 보류했지만, 폴리네이케스는 포기하지 않고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가지고 암피아라오스의 아내를 매수했습니다. 목걸이를 본 그녀는 눈이 멀어 남편을 설득했고 결국 테베 원정에 나섰지만 결과는 예언대로 대패였습니다. 아르고스군은 전멸했습니다. 폴리네이케스는 테베에 쳐들어가기 전 아테네에서 테세우스의 보호를 받던 아버지 오이디푸스르 찾아가 축복을 부탁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내쫓은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를 저주했습니다. 또한 안티고네도 테베를 쳐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거부하고 아테네를 떠났습니다.

“만약 내가 그것을 말한다면 나는 곤란해지고,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도 테베를 구할 방책은 듣지 않는게 좋을 것입니다”

한편 테베의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와 함께 아르고스의 공격에 맞서 전력을 배치한 뒤 아들 메노이케오스를 데리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아르고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살인자를 찾을 단서를 요청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망설였습니다. 크레온은 테이레시아스를 붙잡고 괜찮으니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그는 테베를 구할 방책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테베를 구하려면 그대의 아들 메노이케오스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의 말대로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좋을 말이었습니다. 크레온은 테이레시아스의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입단속을 부탁했고, 아들 메노이케오스에게는 예언은 무시하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 전에 테베를 빨리 빠져나가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깊이 고민하던 메노이케오스는 마침내 큰 결심을 했습니다. 성곽 꼭대기에 올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들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테베의 모든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가는데 신탁을 받고도 그저 살기 위해 거부한다면 추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성곽 꼭대기에 올라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베의 구원을 기원하며 스스로 신들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땅을 향해 몸을 던지며 추락하자 테베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올랐고, 병력의 수적 열세에도 아르고스인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테베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자기 시신을 눕게 할 만큼의 땅만 얻었구나”

그렇다면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테베에는 일곱 개의 성문이 있었습니다. 각 성문에는 일곱명의 장수가 배치됐고, 메노이케오스의 고귀한 희생과 격렬한 전투 끝에 테베는 모든 성문을 지켜냈습니다. 마지막 성문에서는 에테오클레스가 직접 나가 폴리네이케스와 정면 대결을 펼쳤는데, 둘은 오이디푸스의 예언대로 서로의 칼에 찔려 함께 쓰러졌습니다. 이를 본 테베인들은 탄식했습니다.

신들이 메노이케오스를 제물로 바쳤기 떄문에 승리를 내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메노이케오스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것이 고귀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테베인들의 마음에 전투의지를 일으켰습니다. 더불어 권력을 향한 양보 없는 충돌은 두 사람은 물론 수많은 테베인들과 아르고스인들의 피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을 보면서 권력을 향한 야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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